트리브 서비스기획자의 회고 2탄
트리브에서 나는 서비스 기획자였지만, 내가 서비스 기획만 했느냐? 그건 아니다.
다른 직무도 그렇겠지만, 기획자는 정말 멀티가 되어야 한다.
트리브를 하면서 서비스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은 다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지금부터 어떤 일들을 했는지 차근차근 되짚어보겠다.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하필 주제로 잡은 게 여행이어서,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여행 서비스를 하려면 일단 최소 여행지 이름과 주소는 꼭 필요했는데, 당시 나름의 이유로 지도 api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데이터를 수집했더랬다.
(이유가 뭐였는지는 사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장소 데이터 api를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모아진 데이터를 살펴보니 우리 서비스랑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최신 맛집/카페 등의 데이터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시간 보내느니 일단 손으로 모으자!가 우리의 결론이었고, 열심히 00동 맛집, 00 가볼만한 곳, 00 카페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서 데이터를 가능한 한 최대로 끌어모았다.
여행하면 한국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생각했을 때, 서울 부산 제주도 이 세 군데가 가장 먼저 떠올라서 3개의 도시를 최초의 목적으로 삼고 작업을 진행했다.
데이터를 모으는 사람이 서울 토박이이다보니, 서울부터 했는데 서울이 정말 너무너무 큰 도시인데다가 각종 카테고리의 장소가 다 있어서 서울만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 도시씩 격파해나가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을 부산, 제주도와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서울만 보기 너무 지루했음)
4년 전 학생이었고 게다가 코로나라 대면 수업도 없었던 나는 매일 못 해도 3시간, 사실은 짬만 나면 데이터 수집 작업을 했고, 그때 깨달았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갈 곳이 정말 너무너무 많구나 = 장소가 정말 욕 나오게 많다..
무튼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견뎌 전국의 주요 여행 도시의 데이터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막 100%란 얘기는 아님, 적당히 앱 운영할 정도는 됐다는 뜻)
내가 당시 모았던 데이터는 서울, 부산, 제주도, 강릉/속초/양양, 여수, 광주, 청주, 대전, 대구, 전주까지 총 12개 도시였다.
데이터를 모으는 게 끝이었을까?
데이터를 사용자가 쓸 만한 방식으로 가공하는 작업이 남았다.
그래서 장소 카테고리 명칭 정하기, 사용자가 검색할 만한 키워드 뽑아보기, 키워드에 장소 매칭하기 등 실제 데이터를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게끔 구성하는 것 등 데이터 관련해서 할 일은 정 산더미였다.
지금은 트리브에서 카카오 지도 api를 사용하고 있어서, 앱 내부에서 00 맛집 이렇게만 검색해도 결과값이 나오고, 새로 생긴 가게, 맛집, 카페 등 최신 데이터가 반영되고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처음부터 api를 적용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몸으로 배우는 것만큼 깊게 남는 건 없는 것 같다. 나는 저 과정을 겪으면서 데이터를 어떻게 구성할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내용은 현재 현업에서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기획자로서 회의에 참석하다보면, 데이터 구축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때 나에게 아무 경험이 없었다면, 저게 다 무슨 소리지? 하고 회의가 끝난 뒤 찾아보거나, 회의 중에 알아보느라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을 텐데,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직접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고 가공해봤던 트리브에서의 경험 덕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아주 뿌듯하단 말씀!
트리브에는 “추천여행지”라는 메뉴가 있다.
에디터가 여행/데이트/약속 등 매주 특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여행지 또는 장소를 추천해주는 메뉴인데, 서비스를 막 시작했던 시절에는 개발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에디터가 되어 글을 썼다.
그렇지만 4-5명이 가본 곳은 한정적이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진정성이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앱을 내려면 일단 콘텐츠를 채워야했기에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정해 글도 쓰고 사진도 모았다.
(도와주신 다른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가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글감이 떨어지고 개발하고 고도화하는 업무로도 충분히 일이 많아서 우리는 대학교 후배들에게 부탁해 에디터 역할을 맡겼다.
(도와준 5명의 친구들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요)
4명의 친구들이 일주일에 1번 작성하는 방식으로 글이 업로드 되었고, 나는 1달에 1번 글감에 대한 회의를 열어 주제를 미리 받고 피드백 하는 역할을 했다. 글을 쓰지 않게 되어 편한 점도 있었지만, 회사에선 막내고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인간이어서 4-5살 어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싫었다는 거 아님 좋았는데 고민이 많았단 뜻임!!)
트리브의 개발/운영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라 어디까지 참여시켜야 할지, 더 깊숙이 참여시키는 게 좋을지, 그렇게 하면 너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얼굴도 못 본 선배랑 이런 일을 한다는 게 불편하진 않을지 등등 많은 고민을 하며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시스템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가 너무 잘 참여해줬고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도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런 콘텐츠 기획의 업무를 통해 깨달은 것은,
매주 글을 기고하는 직업군(칼럼니스트, 매거진 에디터 등등)은 정말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본 그들의 역할은
저 4가지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을 텐데 잠시 생각한 것마저도 어려운 것들이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앱을 처음 배포할 때만 해도, 그때 같이 하던 4명이 모든 버튼을 눌러보면서 에러나 버그가 있나 없나 확인하면 될 정도의 규모였다.
하지만,
보태보태병으로 인한 앱 대규모 확장에 따라 앱이 업데이트 될수록 체크해야 할 부분이 계속 늘어났다.
트리브에서 QA를 했던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확인이 필요한 메뉴와 각 메뉴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기능을 적고, 어떻게 작동하는 게 맞는 건지를 적은 뒤
테스트 플랫폼이나 apk를 받아서 시트대로 쭉 테스트를 해보면 된다.
그 다음 확인된 오류 사항을 개발/디자인/기획 각 파트가 맡아야 하는 부분으로 분류해서 전달하고,
수정된 부분을 확인하고 재확인하고 재확인하고 … 를 반복하면 배포를 할 수 있다.
(한 가지 팁 아닌 팁을 주자면, 직무가 QA가 아닌데 지원을 하는 경우라면 내가 도라이다 생각하고 해보시라. 세상에는 정말 희한한 사람들이 많고, 여기서 이걸 누른다고? 이걸 못 본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건 보통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도라이라는 세뇌를 한 뒤에나 발견할 수 있다.)
트리브는 정말정말정말정말 기능이 많아서 QA가 오래 걸렸다. (그만큼 고도화가 많았던 거겠지)
저 사진도 정말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저 뒤로 엄청엄청 많다는 거..
나는 주로 띄어쓰기 오류에 특화되어있다. 눈에 너무 잘 띔.
그리고 저 한 개의 기능당 세부 기능(메뉴)도 많아서 한 시트에 탭이 기본 3-4개였다.
이렇게 QA를 했던 경험은 현업에서 또 야무지게 쓸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직무는 사업기획이지만, 사업 관리를 하는 부서이다보니 디지털 서비스 오픈 때마다 QA를 여러 번 거치고 지원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전체 진행 과정이 대략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겠구나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단위테스트를 지원하느라 서비스를 훑을 때 위에서 얘기한 도라이짓을 한 번씩 하면서 희한한 오류를 잡아내기도 한다.
(QA 조직이 놓치고 지나간 부분을 찾았을 때는 정말 짜릿하다.)
사업기획으로 입사했지만 서비스기획, 콘텐츠 기획, 지금은 심지어 무슨 영상 시나리오까지 작성하고 있는 마당이라 이젠 뭘 시켜도 놀랍지 않을 지경인데,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는 걸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트리브로 다양한 경험을 해본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직무 아닌 거 시킬 때 빡치는 건 여전하다)
이런 게 바로 사이드 프로젝트의 순기능 아닐까?
이외에도, 상표출원이라든지 SNS 광고집행이라든지 여기에 적지 못한 여러 경험들이 있다.
사람은 경험을 먹고 사는 게 확실하다.
특히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부담이 없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당황도 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향적인 사람은 “준비과정”이 많이 필요한데, 사이드프로젝트가 그 부분에서 안전한 연습장이자 운동장이 된다.
물론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본인의 전문성을 기르면서 연관되어있는 곁가지 일을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면 인생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읽어보면 좋을 글은 또다른 기획자인 몬몬의 글입니다. 저와는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고 현업이나 트리브 내에서 주로 하는 일도 달라서 기획자의 다양한 면모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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